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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강의

드라마로 복수하기

 


사진은 목감천에서 찍어본 벚꽃.

어느 지역아동센터에서 3년동안 지켜본 아이가 있다. 나는 그 아이를 A라고 소개하고 싶다.

A와 처음 마주쳤을 때 그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늘 슬퍼보였고, 무기력해보였고, 어른들에게 혼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관찰해보니 충동조절의 문제, 힘조절의 문제, 주의력의 문제가 눈에 띄었다. A는 드라마만들기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와 대화 나눌 일이 없었고, 가끔 대화를 시도해보았으나 A는 시선을 외면하고 가버렸다.

드디어 A를 3년만에 내담자로 마주하게 되었다.

A는 2년동안 드라마만들기를 멀리서 잘 보았고, 나의 요청을 받아 몇번 참여한 적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안다고 했다. 그래서 A는 주인공이 되어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답했다.

A가 복수하고 싶은 사람은 드라마치료에 참석한 또 다른 아이 B였고, 라이벌 관계였다.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미리 정보를 들은 덕분에, 나는 A와 B의 대립관계를 어떻게 연극적인 방법으로 풀어볼지 고민해보았다.

A는 자신이 교사가 되고, B를 문제학생으로 설정하여 혼내줄 생각이었다. 이렇게 진행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A에게 이야기 설정과 연출을 나에게 맡겨주면 보다 더 멋지게 복수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제의하고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 악수하는 것으로, A는 나의 제의에 응해주었다.

A는 교사가 되고, 나는 교장이 되었다.

나는 A에게 요즘 담임교사로 일하면서 많이 힘들어보인다고 말했다. 그러자 A는 몇몇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데, 특히 B가 제일 문제 많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가 많은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하자, A는 잠시 생각한 뒤 웃음 띤 얼굴로 생각해둔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나는 당장, B의 집에 전화해서, 그 집에서 제일 큰 어른과 이야기 해보겠다고 제의했다.

나는 전화하기 전에 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달라고 B에게 부탁했다. 마침 지금 이 연극을 하기 전, 복수의 대상인 B가 자발적으로 할아버지 연기를 했었기에, 내가 전화거는 연기를 하는 순간, B는 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면서 나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손자 B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이라고 소개한 뒤, 손자가 문제학생이 되어 학교에서 문제를 계속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갑자기 “뭐라구요!”라고 외치면서 눈을 크게 뜨며 장난스럽게 놀라는 모습을 연기했다. 그 순간, 주인공과 할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앞으로 어떻게 손자를 교육시킬지 물어보자, 할아버지는 당장 손자를 불러 혼내고 용돈을 뺏겠다고 외쳤다. 모든 참가자들이 큰소리로 웃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지금 담임교사를 바꿔드리겠다고 말한 뒤, 전화기를 A에게 넘겨주었다. A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을 B의 담임이라고 소개한 뒤, “저기요! 집안교육 좀 똑바로 시키세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외쳤고 모든 참가자들이 큰소리로 웃었다.

B가 할아버지 역할을 재치있게 연기한 덕분에, A는 만족스러운 복수를 했고, 복수의 대상이 된 B는 자신이 직접 복수당하지 않으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것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리 논의한 것도 아니었는데, 즉흥적으로 서로 재치있고 조화롭게 연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두 아이에게 서로 인정해주고 양보해주면서 연기해준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뛰어난 연기력 덕분에 즐거웠다고 감사인사를 했다.

B는 드라마 만들기가 어떤 시간인지 확실히 알았고, 다음주는 자신이 복수할 차례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미 장면을 다 구상해두었다고 했다.

어떤 장면을 구상했는지 물어보자, B는 살인사건을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서로 경쟁하듯, 각자 죽는 모습을 코믹스럽게 연기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각자 어떻게 죽을지 계속 연습해보고, 다음주 화요일까지 '만들고 싶은 드라마'를 생각해보도록 권유했다.

연극적인 방법을 통해, 3년간 지켜봐온 A의 밝은 모습을 많이 보아 기뻤다. 그리고 자신이 구상한 연극에 성취감을 느낀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두 아이의 대립이 연극을 통한 선의의 경쟁으로 이어져,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 나도 일주일 동안 어떻게 죽을지 연구해보고 연습해보아야겠다. 내가 제일 먼저 시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 죽음과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저는 비교육적으로 끔찍하게 진행하지 않습니다. 드라마 만들기는 제가 고안한 안전한 연극 놀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