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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강의

자원봉사자의 지적재산 관리

*** 아래 글은 2005년 5월 23일, 싸이월드 페이퍼에 남긴 글입니다 ***






예술치료 자원봉사자 여러분들께.

 

저는 상계백병원을 거쳐 연세로뎀정신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지경주입니다.
1991년 처음 심리극을 알게된 이후로 많은 예술치료 실무자를 만나뵙게 되는 기회를 가졌고
2002년 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전부터 여러 곳에서 집단 프로그램 진행 자원봉사를 해왔는데요,
최근 제 경험을 바탕으로 '자원봉사자의 지적재산 관리'에 대해 나누고 싶어 글 올립니다. 

올해 2005년 1월, 인터넷 검색 중, 제가 자원봉사했던 병원에서 만든 워크북을 발견했습니다.

인지도가 높은 그 병원은 일주일에 한번 연극치료와 치료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한 곳이기도 하고,
제가 아는 직원들이 그 책의 공동저자로 참여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소개글을 읽어보았지요.

그분들의 치료 프로그램이 '모범'이 된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보여주고 비판도 받으며 
개선된 프로그램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를 제시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바로 밑에 나온 목차에서 익숙한 기법 제목들이 나열된 '연극치료' 챕터가 보였고
어떤 내용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서 당장 구입해 읽어보았습니다.

연극치료의 정의에서부터 기법소개와 마무리까지 연극치료 챕터를 한장씩 읽어가면서
너무나 익숙한 내용들이 눈에 띄어서 놀랐고, 이미 작년 봄에 출판된 책이라는 것에 놀랐으며,
공동저자들의 절반이 제가 진행했던 연극치료에 함께 참여하신 분들이라는 것에 더욱 놀랐습니다.

그 책의 연극치료 챕터에 실린 연극치료 기법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1) 저자들이 출처를 밝히지 않은 연극치료 기법

 2) 저자들이 출처를 밝힌 배우훈련 기법

 3) 저자들이 출처를 밝힌 심리극 기법

연극치료 챕터 내에서 가장 많이 소개된 것은 저자들이 출처를 밝히지 않은 연극치료 기법이었는데,
저와 관련된 기법들이 연극치료 챕터의 절반 이상을 구성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몇주를 고민한 뒤, 저는 공동저자 중 연극치료와 직접 관련된 두 사회복지사에게 연락했고
아래와 같은 답변을 받았습니다.

1. 
공신력있는 우리 병원의 좋은 프로그램을 다른 병원들과 널리 공유하기 위한 취지에서
병원에 근무하는 전문가들이 그동안 시행했던 기법들을 선별하고 메뉴얼화 하여 책을 냈음.

2.
선생님이 우리 병원에서 진행한 연극치료는 수련사회복지사가 프로그램 일지에 계속 정리했고, 
우리 병원 일지를 참고하여 기법을 선별했기 때문에 굳이 선생님에게 연락할 필요를 못 느꼈음. 

3.
우리 책에 선생님과 직접 관련된 기법이 많은 것처럼 말하는데, 우리가 보완해서 소개한 기법도 있고
다른 자원봉사자가 소개했거나 우리 병원의 수련사회복지사가 소개한 기법도 있음. 

4.
선생님의 이름을 우리 책 개정판에 넣게 된다면, 우리 병원에서 이미 퇴직한 직원들의 이름과 
예전에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던 자원봉사자들의 이름도 함께 넣어야 하는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함.
그렇기 때문에 우리 책에는 공동저자 외에 다른 이름을 넣어야 할 이유가 없음.

5.
우리 책이 출판되기까지 기획단계에서부터 체계적인 컨설팅을 받으면서 준비했고
다른 책에서 인용한 기법들은 분명하게 출처를 밝혔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음.

6
선생님이 소개했어도 우리 병원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소개해도 무방하다고 봄.

7.
본인은 수련사회복지사의 입장에서, 상사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책 만들기에 참여한 상황이었고,
다른 저자들과 공동으로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내가 선생님께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음.

8.
선생님이 특정 공동저자에게 제공했던 자료가 우리 책에 실린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일임.
그 일은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본인이 대표저자라고 해도 관여할 이유가 없음.

9.
우리 책이 나온 것은 이미 일년 전 일인데, 왜 이제서야 연락해서 이런 말을 꺼내는지 모르겠음.

10.
본인은 1년 전에 퇴사했고, 출판 뒤 병원에서 저작권을 넘기도록 저자들에게 각서를 쓰게 했음.
책에 대해 항의할게 있다면 본인에게 연락하지 말고, 저작권을 갖고 있는 병원에 직접 연락하기 바람.

11.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우리 책에 대해 아무 말 없었음.

12.
좋은 기법을 널리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선생님이 축하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지?
평소 선생님 하는 일이 잘 되기 바랬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 실망했음.

13.
우리 병원 설립 기념으로 책을 만들었고, 수익금은 우리 병원의 공익기금으로 쓰이기 때문에 
공동저자들에게는 어떠한 금전적인 이익도 없음.

14.
우리에게 연극치료 책을 낼 예정이라고 미리 말하지 않았음.

15.
선생님과 관련된 기법들이 과연 선생님만의 독창적인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지?

16.
나중에 선생님이 책을 만들 때 우리 책에 있는 연극치료 기법을 소개해도 괜찮지만,
그대신 우리 책과 관련된 이야기는 함부로 외부에 언급하지 말 것.

17.
우리 책에 대한 본인의 입장은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임.

18.
선생님의 생각만 일방적으로 강조하여 우리 병원과 공동저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기 바라고,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서 좀 더 넓게 생각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했으면 좋겠음.



저는 지경주와 관련된 기법들이 어떻게 저 모르게 책으로 출판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는데,
이미 1년전에 출판된 책에 대해 왜 갑자기 연락해 설명을 요청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과 함께,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비교당하고, 독창성 평가를 받았고,
수퍼비전 받듯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서의 마음 가짐에 대한 충고 또한 함께 들어야만 했습니다.
거기에다 실망했다는 말까지 들어야 하다니...

저와 연락을 주고 받은 한 분은 그 책의 대표저자로, 저의 자원봉사 활동을 담당하고 관리했고, 
다른 업무도 많았기 때문에 제가 진행하는 연극치료에 불규칙적으로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분은 제가 자원봉사를 그만둔 2년 뒤 그 병원의 연극치료를 진행을 맡게된 수련사회복지사로서,
연극치료를 진행해 본 적이 없다며 제게 개인적으로 연극치료 자료를 요청하여 받아갔었는데,
연극치료 진행 외에도 그 병원의 프로그램 메뉴얼 제작에 자료를 활용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두 분 다 그 책이 출판되기 전에 이미 그 병원을 퇴직해 다른 곳에서 일하던 중이었지요.

답변을 정리하면서, 제가 소개한 연극치료 기법들을 선정해 책에 소개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과나 양해없이 병원이름, 공동저술, 공신력, 공유, 공익, 컨설팅을 앞세운 두 분의 모습이 낮설었고
두 분에게 조심스럽게 연락해 설명을 요청하고 답변을 경청했던 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병원 내 메뉴얼 제작'이나 '워크북 출판'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 병원 내 메뉴얼 제작 -
2000년

제가 자원봉사자로 치료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었던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낮병원의 경우, 
집단 프로그램 메뉴얼을 만들게 되면서 담당 간호사님께서 메뉴얼 제작 참여를 정중하게 요청하셨고
기법공유에 대한 사전양해와 메뉴얼의 취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 후, 참여의사를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출처를 밝히는 조건(기법소개 시 하단에 제 이름과 연락처를 수록함)으로 동의했고,
담당직원에 의해 관리되는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메뉴얼에 참여했습니다.


* 워크북 출판 - 2002년
대형서점에서 볼 수 있는 '왕따청소년의 사회적응력 높이기 - 사회기술훈련'이라는 책에는
제가 직접 원고를 작성한 '심리극을 활용한 집단 프로그램'이라는 챕터가 있습니다.
담당 사회복지사님께서 몇년간 활용했던 기법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워크북을 만드시면서
제게 워크북 제작에 동참할 수 있는지 정중하게 물어보셨고, 저는 기쁜 마음으로 응했습니다.
기분좋게 원고를 만들었고, 책 서두에 소개된 제 이름을 보며 뿌듯했었던 기억도 나고,
내가 작성한 원고가 널리 읽혀지고 활용될 수 있다는 것에 무척 감격했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지금도 상계백병원 정신과에서 계속 청소년 대상의 연극치료를 진행하고 있지요...


 
제가 경험했던 두 사례는 담당자들의 정중한 사전양해와 설명, 명확한 의사소통과 합의가 있었고
당연한 절차를 밟아 이루어진 것으로, 최근에 겪은 일과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저는 그 병원에서 자원봉사할 때마다 오늘 진행내용에 대한 사전 브리핑을 직원들에게 했습니다.
연극치료가 끝나고 난 뒤에는 오늘 진행에서 활용했던 기법과 진행자의 의도적인 연극적 개입내용,
함께 참여한 환자에 대한 소견 등을 직원들에게 구술하면 수련사회복지사는 일지에 기술했지요.
저의 구술을 직접 기술했던 2000년, 2001년 수련사회복지사들은 그 책의 공동저자도 아니었고,
책이 나온 것은 알았지만 자신들의 기록을 참고해 연극치료 챕터를 만든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2001년 12월까지 그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서 연극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이후 대학 후배가 잠시 진행하다가 그만두자, 그 병원의 수련사회복지사가 직접 진행을 맡았고,
제가 진행했던 기록을 잘 참고하고 있다는 말을 그 병원의 연극치료 담당자에게서 직접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진행을 맡게된 수련사회복지사는 저에게 연극치료 자료를 요청해 받아갔지요.

아무리 살펴봐도 책에 소개된 연극치료 기법은 저와 관련된 기법 아니면 출처를 밝힌 기법인데,
몇몇 기법에 첨부된 응용기법 외 다른 자원봉사자와 수련사회복지사가 관련된 기법은 없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1999년 1월에 그 병원이 설립되어 2004년 1월에 그 책이 나오기 전까지
1999년 한해 동안 연극치료 프로그램을 맡았던 선임 자원봉사자, 2001년 상반기 담당 자원봉사자,
2000년 전체와 2001년 하반기를 담당했던 지경주, 저 이후 2002년에 잠시 진행을 맡은 대학 후배,
2002년과 2003년에 근무한 수련사회복지사 2~4명이 그 병원의 연극치료를 진행했습니다.

그 병원에서 수련사회복지사 2명이 1년동안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연극치료를 진행했다면
짧게는 6개월씩 두 사람이 나눠서 진행했거나 혼자서 1년동안 진행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수련사회복지사 입장에서는 병원에서 업무를 처리하기도 바빴을 것 같은데,
일주일에 한시간 진행하고 경험도 없는 연극치료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일방적으로 출판하고, 일방적으로 답변하고, 일방적으로 마무리 짓는 두 사회복지사의 모습을 통해,
제가 모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서 진행했던 연극치료 프로그램과 직원에게 제공한 연극치료 자료는 
그 책을 만드는데 유용하게 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퇴직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병원을 자주 '우리 병원'이라고 부르는 모습은
그 병원출신이라는 강한 자부심과 그 병원의 네임벨류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뒤늦게 병원 측에서 저자들에게 각서를 보내어 저작권을 넘기도록 조치했던 상황과
설립된지 십년도 훨씬 되지 않은 병원에서 갑자기 설립 기념으로 책을 만들었다는 점과
책 소개글에서 그분들이 활용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모범'이라는 단어를 스스로 붙였다는 점과
책이 출판되기 전에 이미 그 병원을 퇴직한 저자들이 있다는 것을 함께 고려해보았을 때,
병원 설립을 기념하기 보다는 병원 근무를 기념하기 위해 책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 일과 관련해서, 제가 진행했던 기법들을 직원들이 임의대로 선별해 출판했음을 밝히기 위해
그 병원에 계신 다른 직원들에게 제가 진행했던 자원봉사 기록열람을 문의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그리고 책에 실린 관련기법이 정말 지경주의 독창적인 기법이냐는 질문을 또 다시 받았으며
이 분야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는게 좋겠다는 조언을 듣기도 했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연극치료 기록을 직원 겸 저자들은 마음껏 자신의 직장에서 열람할 수 있었겠지만 
저는 외부 자원봉사자였고 당시 참여한 환자들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열람할 기회조차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이 이 분야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며 그냥 넘어가라니...
이런 일까지 겪게 되니 이제는 직원뿐 아니라 그 병원과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싫어졌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저는 사회복지사로서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현실을 경험하게 되었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밖에 없다'는 현실 속에서 무척 우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나마 저는 병원에서 연극치료를 활용하는 사회복지사로서 저자들에게 항의할 수 있었습니다만,
직원을 통해 특정 기관과 연계될 수 밖에 없는 외부 자원봉사자로서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제가 했던 이런 식의 항의조차도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서문을 보면 전문가들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매우 구체적으로 작성한 책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 책에 소개된 연극치료에 대한 '전문가들의 실제 경험'에 의문이 많습니다.
공동저자들 모두 원고를 만들 당시, 공신력있는 특정 병원에 근무했다는 공통점만 갖고 있을 뿐,
연극치료 분야에서 계속 활동해왔거나 연극치료 전문가로 알려진 분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 소개된 연극치료 기법들을 1년이상, 여러번 진행해보신 분 또한 없다고 확신합니다.

아무리 각 분야의 임상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하여 연극치료 챕터를 공동 집필했다고 하지만,
그 병원에는 연극치료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었고
공동저자 중 그 부서에 해당되는 분들이 바로 저와 연락을 주고받은 두 사회복지사입니다.

한 분은 부하 직원에게 연극치료 진행을 전임하고 가끔 참여하셨던 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연극치료를 직접 진행해보았을 저자는 부하 직원인 또 다른 분일거라고 추측하는데,
그 분은 대학졸업 후 1년간 그 병원의 수련사회복지사로 근무하다 기업복지로 활동분야를 옮겼고
그 책이 출판되었을 때는 이미 어느 대기업에서 연극치료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설마 직장 상사의 지시로 처음 접해본 연극치료를 1년동안 주 1회씩 진행해 본 경험이나,
참여했던 경험만을 연극치료에 대한 전문가들의 실제 경험이라고 표현한 건 아니겠지요?
그리고 임상전문가로서, 연극치료에 대해 무엇을 구체적으로 작성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으며,
아무리 연극치료 챕터를 살펴보아도 다른 임상전문가들의 코멘트라고 할만한 글은 보이지 않는데
다른 분야의 임상 전문가들이 어떤 식으로 연극치료 공동저술에 참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출판된지 1년이 넘은 그 책은 여전히 특정 병원과 공동저자의 이름을 걸고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사실을 모른채 저와 관련된 연극치료 기법들을 참고해 실무에 활용할 수도 있고,
리포트나 논문을 작성하면서 그 책에 실린 저와 관련된 연극치료 기법들을 참고할 수도 있고,
제가 진행하는 특정 기법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책을 참고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항상 낮은 곳에서 낮은 목소리에 응해왔고 낮은 네임밸류를 갖고 있는 젊은 사회복지사입니다.
나중에 제가 연극치료 책을 냈는데, 두 책에 서로 겹치는 기법을 누군가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렇다고 제가 책을 내면서, 서로 중첩되는 기법마다 구구절절히 사연을 소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음부터 저작권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중첩되는 기법들을 소개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대표저자에게서 저와 관련된 기법을 나중에 제 책에 소개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아내긴 했지만,
먼저 활자화한 사람에게 저와 관련된 기법에 대한 출판허락을 구해야 하는 현실이 아이러니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활자화 된 자원봉사 활동은 출처를 밝히고 인용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공식적으로 활자화 되지 않은 자원봉사 활동은 지적재산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을 뿐더러
주인없는 자료로 간주되어 먼저 활자화한 사람의 지적재산이 되는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저는 임상에서 활동하고 계신 예술치료 자원봉사자의 능력 자체를 지적재산이라고 생각하기에
기관에서 활용되는 자원봉사자들의 소중한 지적재산은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하며
자원봉사자를 관리하는 해당 기관의 직원들은 직업윤리에 입각해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사례를 통해, 창조적인 집단 작업을 수행하시는 분들께서는 자신의 지적재산을 잘 관리하시고
소중한 경험과 지식을 클라이언트와 후배들에게 잘 전달해 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 경험해 온 것을 워크북으로 만들기 위해 연극치료 기법들을 정리하던 중이었고
그 책에 나온 소개된 기법들을 제외한채로 원고를 만들어보기로 생각했습니다만
계속 다듬고 보완해온 여러 기법들을 함께 소개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


연극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예니출판사 사장님께서 제가 겪은 사연을 들으시고는
'사연이 어쨌든, 출판계에서는 먼저 책을 못 내면 그것으로 끝이다'라고 말씀해주신 기억이 나네요.
2000년, 2001년 제가 그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할 당시에는 연극치료가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미 그 병원에서 '연극치료'라는 이름으로 계속 진행되어 온 프로그램을 제가 맡기로 했기 때문에
연극치료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면서, 환자들의 특성을 고려한 기법들을 직접 고안해야만 했습니다.
연극치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당시 직원들은 제가 준비한 기법에 대해 미리 브리핑을 받고나서
병원 분위기와 개별 환자정보를 제공해주고, 도우미로서 연극치료에 동참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병원 안밖에서 제가 진행하는 연극치료에 대해서 수퍼비전을 주실 분도 마땅하게 없었기에,
연극치료에 참여한 환자들의 반응과 의견이 제게는 수퍼비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다행히 함께 참여한 환자들과 직원들이 연극치료 시간을 좋아해주신 덕분에 많은 힘을 얻었고,
서로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1시간의 연극치료'를 위해 1주일내내 고민했었는데...

저는 사회복지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집단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조금은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큰 좌절을 겪었고,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대해 강한 회의가 생겼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면, 이런 현실 속에서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기 보다는
제 꿈을 존중해 줄 수 있는 다른 분야를 찾아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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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관리를 맡은 직원들이 자원봉사자의 허락이나 사전양해 없이 자원봉사자의 활동을 
자기 마음대로 선별하고 가공해 당당하게 책으로 출판할 수 있다는 현실이 제겐 큰 충격입니다.

그 책을 만든 좋은 취지만큼이나, 수단과 방법도 좋았다면  저는 두 저자와 연락할 일이 없었고
두 저자께서 제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답변을 했었다면  저는 축하의 말을 대신 전했을 거고
이 일을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저는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이 일로 저자들에게서 공식적인 양해나 사과를 전혀 받은 적이 없으며 전문가들의 권유로
다음 개정판에 짧게 제 이름을 언급해 주실 수 있으신지 문의했다가 단호하게 거절 당했습니다.

저는 자원봉사자로서 그 병원을 이용하는 클라이언트들을 위해서 연극치료를 진행했던 것이지,
그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의 책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연극치료를 진행한 것은 아닙니다.

네임밸류가 높은 병원에서 제게 연극치료를 진행할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신 것이나
그곳에 근무하시는 우수한 직원들께서 제가 진행했던 기법들을 기억해주고 선택해주신 사실은
제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영광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면서 마음깊이 감사해야 하겠습니다만
특정 병원에 근무했던 임상전문가였다는 이유만으로, 자원봉사자가 소개한 연극치료 기법들을
자신들이 공동저술한 책을 통해 널리 공유한다는 생각은 선민사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행위에 대한 책임소재를 공동저자로 분산시키고 병원측으로 넘기는 모습에서
병원의 네임밸류와 컨설팅을 활용하면 출판작업과 책임 회피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대학 졸업 후 일년동안 그 병원에서 임상경험을 하다가 다른 분야로 떠난  수련사회복지사에게
임상전문가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공동저자의 기회를 주신 것에서 네임벨류의 위력을 느낍니다.

또한 병원의 설립기념을 위해 책을 만들었다면 그 책에는 그 병원의 프로그램을 담당한 수많은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도 함께 담겨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책에 올라온 영광스런 이름은
그 책을 준비할 당시 그 병원에서 근무하던 일부 직원들에만 해당된다는 점에서 의문이 생기며,
설립기념을 위한 책이면, 병원의 전폭적 지지와 지원 하에 출판작업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텐데
그 책이 출판된 이후 각 공동저자에게 각서를 보내어 병원으로 저작권을 넘기도록 했다는 것은
병원 측도 저와 마찬가지로 그 책이 기획되고 출판될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저는 '인간과 믿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시간 쌓아온 인연이 타의에 의해 어이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공신력 있는 기관에 근무하면서 책을 내면 여러가지 유리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공신력 있는 기관에 계신 전문가 모두가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들지 않을거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다른 공동저자나 감수자, 출판 관계자들도 잘 알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단지 책에 연극치료를 소개만 하지 마시고, 계속 실무에서 활용하여 연극치료에 익숙해지신 뒤
어이없는 정의와 피상적인 기법소개를 반드시 수정하고 보완하여 다음 개정판에 반영하십시오.
그럴 수 없다면 제 동의없이 마음대로 소개하신 연극치료 기법들 모두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연극치료에 애정이 많고 그 책에 나온 모든 연극치료 기법들을 잘 알고있는 사람으로서,
또한 결코 저렴하지 않은 그 책을 직접 구입한 독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하는 부탁입니다.

만약에 그 기법들을 소개했고 훨씬 많이 활용하고 있는 저에게 기법 소개의 기회를 주셨더라면
클라이언트와 실무자를 보다 많이 배려한 좀 더 넓은 의미의 기법 공유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금전적인 이익은 없었겠지만, 공유의 취지를 담은 그 책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질테고
지금은 다른 곳에 몸담고 있는 몇몇 저자들의 이름은 병원 이름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되겠지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내셨다면, 그 책에 대한 평생 책임을 지셔야 하는 것도 잘 아실겁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마 19:26)





*** 아래는 2009년 4월 8일에 쓴 글 입니다 ***

이 일을 겪은 뒤 곧바로 제 책을 준비해서
다음해 지경주의 연극치료 워크북이 나왔습니다.

4년이 지난 일이지만 저는 그 책과 관계된 분들의 사과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저자 중 한분이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그건 사과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이 글을 읽으셨는지, 또 다른 저자에게서 항의전화를 받은 적은 있습니다.
이미 서로 다 얘기했고, 제 책이 나왔으면 된거 아니냐는 말씀, 

게다가 원치않는 정신보건사회복지사 수퍼비전까지 일방적으로 주시는 바람에
그저 듣기만 했었지요...


그 책은 저에게 네임밸류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가르쳐주었고
네임밸류의 거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일부 인신공격과 대다수의 무관심 속에서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신 몇몇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