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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그리고 공부

세밧사의 일인시위와 촛불시위

 

 

 

 

 

아래는 이명묵 세밧사(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대표의 글입니다.

저는 세밧사의 일인시위와 촛불시위를 지지합니다.

 

 

 

지난 3월에 시작한 "사회복지사의 죽음에 항의하는 일인시위"가 70일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복지부 앞의 촛불시위도 세 번 하였습니다. 주위에서 이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세밧사가 왜 거리로 나서는지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어, 나름 대답을 합니다.

1. 세밧사에서 일인시위나 촛불집회를 하는 것 자체에 동의 또는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의문을 갖는 분들이 사회복지계에 일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소수의 이 분들에 대하여 매우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 대다수의 사회복지사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이미 관심 갖고 질문을 던져주시는 것 자체에, 진심으로 고마운 심정입니다.

2. "사회복지공무원은 우리와 다르다. 심지어 그들은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아니라 그냥 '공무원'이다."라는... 인식에 대하여 토를 달지 않겠습니다. 1987년 전담공무원제도가 도입된 이래 민간현장이 26년간 겪은 결과임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세밧사가 그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항의하는 것에 대한 대답은 마틴 니뮐러의 시 「그들이 들이닥쳤을 때」로 대신합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지 때, 나는 침묵했다.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그들이 유대인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 "당사자인 사회복지공무원이 움직이지 않는데, 우리가 왜 행동해야 하는지 명분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움직이지 못하거나 안하는 사실에 대하여 세밧사도 답답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당사자의 동향은 참고사항 일뿐, 세밧사가 문제 삼고 분노하는 것은 정부의 태도와 인식입니다. 사회복지사가 4명씩이나 업무상 자살을 하였음에도(그것은 명백히 국가명령에 따른 타살이었음에도)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안전행정부 장관이나 국무총리나 대통령 누구도 책임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회복지 알기를, 사회복지사 알기를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이러겠습니까? 보건소의 간호사 4명이 업무상 자살을 해도, 공립병원 의사 4명이 업무상 자살을 해도 정부가 이랬을까요? 간호사협회와 의사협회는 어떻게 했을까요?

4. 마지막으로 그들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분들에게, 한 분의 유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일이 많은 것 정도는 참을 수 있다.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투덜대는 건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 눈에는... 분명 배부른 투정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인간이기에 뜨거운 피와 따뜻한 살이 도는 하나의 인격체이기에 최소한의 존중과 대우를 원하는 것이다. 공공조직의 제일 말단에서 온갖 지시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일개 부속품으로서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건 머리 일곱 개 달린 괴물과의 사투보다 더 치열하다. 내 모양이 이렇게 서럽고 불쌍하기는 평생 처음이다. 무슨 말로 떠든대도 지금 내 고통을 알아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으레 다 겪는 일이고 누구에게나 고되고 힘든 자리이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열심히 버티라고 말해주겠지. 이 자리에 앉아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그런데 그런 말을 듣자면 힘이 나는 게 아니라 마구 화가 치솟는다.

부모, 부인,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깔끔하게 사라져준다면, 적어도 그 순간 내가 진짜 절박했노라고 믿어 줄 것이다. 죽음의 가치와 무게 따위를 재고 싶지는 않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정도를 넘어선 고통이다. 하루하루 숨이 턱에 차도록 버거운 일상을 헤쳐 나가며 머리를 쥐 뜯어가며 시달려온 나날들 무얼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의미도 방향도 잡히지 않는다.
지금의 스트레스 속에서내일을 꿈꿀 희망조차 완전히 바닥나 버린 걸까. 얼마를 번대도 무엇을 하며 즐긴대도 형편없이 망가져 버린 마음을 짧은 고통 후에 영원한 안식 속으로 잠겨들고 싶다.

살아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한줌의 먼지가 되어 떠나간 저 세상에선 죽음도 고통도 쾌락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향기롭고 순수한 시간이 지금 내 절망을 위로해 주리라. 한순간만 과감하게 작정하면 된다. 까짓 거 그냥 가버리면 되는 거다. 나로 인해 여러 사람들이 느낄 그 슬픔보다 지금의 내 상황이 훨씬 괴롭다면 과연 이기적인 상상일까? 못하는 만큼 안 되는 만큼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거다. 맞서야 할 일들 앞에 도망쳐 가며 비겁하게 살지는 않았다. 적어도 승부 앞에선 당당한 삶이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 앞에서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날 짓누르는 조직과 질서 앞에, 지난 두 명의 죽음을 지들이 약하고 못나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오서 내 진심을 보여주고 싶다.

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치 정말 힘들다. 값싼 자기연민 자기비하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 정도 일로 뒈지냐 라고 비웃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좋다. 내가 사라진 다음, 뭔가가 바뀌진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