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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데모, 시위, 집회, 사회운동, 민주주의, 공존...

데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어렸을 때 이미 형성되었다.

1980년대 당시 개방대(지금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근처에서 초/중/고를 다니면서

최루탄은 평범한 일상 속 냄새 중에 하나였다.

 

최루탄 냄새가 나면 또 개방대에서 쓸데없이 데모한다는 어른들의 목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최루탄 덕분에 단축수업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데모에 호의적인 또래 아이들도 기억난다.

 

나는 최루탄으로 인해 내가 불편했고 주위 어른들도 불편해하는 모습을 관찰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데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왜 쓸데없이 데모하는 사람들 때문에,

데모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최루탄 냄새를 맡아야 하는가?"

그런데 이 생각은 몇년뒤 대학생이 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왜 시위에 대처하는데 경찰은 최루탄을 사용하는 것일까?

최루탄은 시위하는 사람들이 터뜨린게 아니잖아?"

점점 더 나이 먹어가면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사회복지사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때 금서로 지정되었던 책들을 읽어가면서,

연극적인 방법을 통해 상대방과 집단을 이해하는 방법을 터득해나가면서,

내가 직접 처해있는 부당한 상황을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쳐 알리고 개선을 요구하게 되면서,

민주주의 사회이기에 가능한 것이 시위이고 이것은 '사회운동'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까스통을 지참하고 언어적/비언어적 폭력을 함부로 행사하며 시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경찰의 보호를 받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면서,

시위에도 격이 있다는 것과

'이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명목없는 퍼포먼스에 가깝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시위에 동참했던 것은 고등학생 시절 전교조가 처음 출범했을 때,

전교조 교사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한 학교재단에 항의해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침묵시위를 했던 것이었다.

 

첫 시위는 내가 알고 있던 최루탄 냄새가 퍼지고 화염병이 오가는 것과는 달리 평화로웠고

성인이 아닌데도 이렇게 시위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선배들을 통한 이러한 배움은 십년전 서울복지재단이사 선임에 항의하는 일인시위,

작년까지 계속되었던 서울시청 광장 앞 촛불집회,

최근에는 세밧사(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의 일인시위와 촛불집회 동참으로 이어졌고

내가 왜 시위와 집회에 동참하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해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시위가 일어나면 시위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보다는,

왜 저 시위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지를 먼저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

조중동의 보도를 잘 참고하여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전생애에 걸쳐 데모, 시위, 집회, 사회운동을 통해

민주주의와 공존의 또 다른 방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