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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치연구소

영화 어톤먼트와 이야기

 

 

 

 

 

영화 어톤먼트.

'나의 의도적인 거짓말로 누군가의 삶이 불행해졌다면...'

주인공은 거짓말로 인한 파급효과의 무게를 느끼면서,
작문을 통해 자신의 감추고 싶은 잉여현실에 대처했고
방송에 자신과 관련된 어떤 이들의 사연을 공개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꾸며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주인공은 한 남성을 파렴치범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이 했던 거짓말에 대해 진실을 밝힌 적 없었고,
범죄자가 된 남성에게 사과한 적도 없다.
그러다가 결국 나이들어 죽음을 앞둘 때 쯤
뒤늦게 소설과 방송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공개했다.

주인공은 평소 속죄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 같고,
나이 먹어 뒤늦게 공개적인 속죄 행위를 했지만
자신의 유명세와 소설 홍보의 목적이 더 커보였고
인터뷰에서도 잘못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감지되기에,
'(이기적인) 속죄'가 더 적절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장에서 느꼈던 여러가지 마음 속의 울림은
6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강렬했다.

이제부터는 영화 어톤먼트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와 존재'에 대해 정리해본다.
(영화를 안 보신 분께는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1.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과정을 통해
보다 선명해지고 풍성해질 수 있지만,
화자의 의지와 의도에 따라 진실은 가공되고 포장되어
이야기는 진실과 다르게 흘러가고 마무리 될 수도 있다.
어톤먼트의 주인공은 이야기를 가공하고 포장했다.

2.
사건/사고를 담은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화자)은
이야기 속 객관적인 사실을 건드려서는 안되고
나머지 부분(심리상태, 언행에 대한 해석 등)을
청자들이 채워넣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톤먼트의 주인공은 청자들을 유도하기 위해
객관적인 사실을 건드려 이야기의 틀을 수정했다.
첫번째 청자는 그 사건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두번째 청자는 그 소설을 읽은 독자들,
세번째 청자는 방송을 통해 인터뷰를 본 시청자들,
네번째 청자는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람자들이다.

3.
이야기를 하나의 건물로 비유해보자.
이야기의 큰 맥락은 설계도에 따르는 건물의 형체이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세부적인 것들은
건물 외부/내부를 풍성하게 꾸미는 것이라고 할 때,
치료/치유적인 목적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룰때는
이야기의 외형, 내형을 수정/보완하는 방법도 있고,
이야기의 형체를 수정/보완하는 방법도 있고,
이야기의 형체를 완전히 바꾸거나 없앨 수도 있다.
어톤먼트의 경우는 이야기의 형체를 유지하되
부분적으로(특히 맨 뒷부분) 수정/보완한 거라고 볼 수 있다.

4.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나는
내가 직접 만나볼 수 없는 무척 낮선 존재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현실 속의 나보다 더 불행할지도 행복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보다 더 더 더 오래 살고 있을지도...
어톤먼트의 두 사람은 실제 삶 보다 좀 더 오래 살았고,
주인공의 상상과 소설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다만 영화 속 실제에서는 불행만이 보일 뿐이다.

* * * * * * * * * * * *

처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던 그때 그 추억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