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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QT를 하면서 드는 생각

직장에서 몇몇 회원들과 특정 QT 책을 통해 QT를 해온지 어느덧 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처음에는 QT 책에 나온 설명들을 최대한 소화하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저자의 개인적인 성향이 뻔히 보이기도 하고,
저자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수용시키려는 의도가 감지되기도 한다.

특히 창세기를 읽으면서 '거짓 이론인 진화론에 동의하진 않습니까?'라는 저자의 질문은
진화론 그 자체를 거짓이론이라고 미리 규정짓고 들어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진화론은 거짓이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뻔히 저자의 생각이 노출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쇄물로 출판되었다는 사실과
저자의 설명을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려는 몇몇 회원의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 기독교의 현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최근 QT시간에는 영문성경과는 조금 다르게 해석된 내용을 전제로 설명되어 있어서
이런 식의 해석을 통한 성경공부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세기 32: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When the man saw that he could not overpower him,
he touched the socket of Jacob's hip so that his hip was wrenched as he wrestled with the man.

QT 해설을 보면 야곱과 상대했던 존재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사자로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감히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사자를 인간이 '이긴다'라는 표현은 부적합한 것 같고,
overpower의 의미를 '이긴다'로 간주하기 보다는 '제압하다'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해보인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보낸 사자도 이길만큼 강한 야곱은 왠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인간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이 보낸 사자에게 힘으로 제압당하지 않을 없을 정도로 강한 인간임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Then the man said, "your name will no longer be Jacob, but Israel, because you have struggled with God and with men and have overcome."

이 구절 역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와 '대결해서 이긴다'라는 표현 자체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overcome이라는 단어도 overpower와 마찬가지로 '이긴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기 보다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와 힘으로 맞대결해서 잘 견디어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야곱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힘을 통한 시험을 견뎌낸 사람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글로 된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성경의 해석권을 특정인에게 부여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이것은 곧 신과 인간은 수직적이라고 보는 많은 특정인들의 주장에 걸맞게
인간들끼리도 특정인과 평신도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규정짓는 것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열린 해석을 하게 만드는 성경은 우리나라에서 어렵게 번역된 덕분에 보다 더 열린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것은 곧 자기의 의사대로 성경을 마음껏 요리하는 특정인을 배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내가 읽는 QT책에 영문성경을 함께 수록해준 덕분에
한글성경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영문성경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편집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보다 큰 도움이 되었으며,
성경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데 큰 힘이 되어 좋다.

마찬가지로 지금 나가는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보면
현 정권을 지지해야 하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불순하다고 하면서 성경구절의 일부를 인용한다.
그러면서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라는 듯 아멘을 외치게 한다.
설교에 의거하면 나는 항상 불순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교회를 그만 다닐 생각은 없다.
그 설교 덕분에 나는 집에 가서 어떻게 성경구절을 이용했는지 분석해 볼 수 있으니
내게는 그 자체가 좋은 공부가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