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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그리고 공부

자살예방교육

*** 아래는 2006년 4월 15일, 싸이월드 페이퍼에 올린 제 글입니다 ***


저는 요즘 직장 근처의 모 중학교에서 자살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약 한달전쯤 갑작스럽게 이틀 안에 자살예방교육에 맞는 기획안을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저는 1시간 중에서 약 20분만 역할극을 진행하는 것을 전제로 기획안을 급히 작성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저 혼자 1시간을 모두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졌고
저는 그 결정에 따라 어느새 2회를 진행했지요.

어떠한 지침도 없이 막연하게 1시간동안 자살예방교육을 하라는 것은
우리나라 청소년 정책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청소년들은 '청소년 정책과 법률'이 어떤게 있고,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잘 모를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전까지 전혀 이런 분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청소년 관계법령만 봐도 청소년기본법, 교육기본법, 평생교육법, 국민체육진흥법,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 한국국제협력단법,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스카우트활동에 관한 법률, 한국청소년연맹육성에 관한 법률,
한국해양소년단연맹육성에 관한 법률, 대한적십자사조직법이 있고
많은 청소년 관련기관들이 법에 근거하여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은 점점 더 많아지고 예산 분배도 관련 인력도 늘어난 것 같은데
왜, 저나 제 주위 청소년들이나 청소년 관계법령이나 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고
수혜를 받아 왔다는 느낌이 없는 걸까요...

이건 어쩌면 청소년을 위한 행정보다는 특정 어른을 위한 행정은 아니었을지
취지는 좋으나 실천 과정에서 여러가지 누수현상을 낳았던 것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보게 되고,
청소년 문제가 사회이슈화 되어야만 급한 불을 끄듯 급조된 대책과 실천이 발생하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정책과도 맥을 같이 한다는 생각도 함께 해보게 됩니다.

다시 자살예방교육으로 돌아가서,
저는 이번 1학기 기간동안 직장 인근에 있는 모 중학교 특정 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주 한반씩 맡아서 1시간동안 자살예방교육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어떻게 진행하는지는 제게 모두 일임된 상태였지요... 

지난주 첫 시간은 학생들을 통제하는데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상담실 담당 선생님께서 모 학년 모 반 담임선생님께
방과 후 자살예방교육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잘 전달해주십사 했었는데
담임선생님은 그냥 방과 후 상담실 옆 교실로 가라는 말만 학생들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학생들은 갑작스럽게 방과 후에 남으라는 지시를 담임선생님에게 받은 거였고,
알고보니 자살예방교육이라는 말에 황당한 상태에서,
그 중에는 동아리 활동, 임원 회의 때문에 빠지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래서 그 어수선한 분위기까지도 모두 제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목이 아프도록 큰 소리로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학생들을 통제하느라
결국 초두효과와 마감효과를 통한 자살예방에 대한 짧은 메세지 전달로 1시간을 보냈고
자살예방교육이 끝나고 며칠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제 마음 속에는 여러가지 수지타산을 떠나서 나와의 1시간 만남이 언젠가
학생들의 인생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랬기에
다음 시간에는 보다 좋은 만남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리고 어차피 저 혼자 자살예방교육을 진행하는거라면 주어진 1시간, 나의 생각과 능력,
중학생들의 이해수준을 절충한 '지경주식 자살예방교육'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어떻게 하면 중학생들의 마음 속에 자살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담을지 고민했습니다.

두번째 시간은 다행히 어수선한 분위기가 훨씬 감소된 덕분에 편하게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렸던 점이 학생들에게는 '자살예방'교육이 갑작스러울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말많고 활달한 학생들은 저에게 직접 왜 자살예방교육을 하냐고 물어보기도 했지요.
"저는 이거 안해도 돼요! 저는 자살 안 해요!"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고...

저는 왜 이런 교육이 필요한지 현실적인 이야기와
제가 여러분과 같은 나이였을 때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주면서(딱 20년 차이네요...),
이 1시간을 통해서 평소 진지하게 논의하기 어려웠던 '자살'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꼭 앞으로 어른이 된 후에라도 진지하게 자살에 대해 논의함으로서
생명존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보기 위한
기본적인 작업이라고 그렇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메스컴에서 접하는 자살 소식을 남의 일인 양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래서 교육이 실시되는 동안 '자살'이야기가 나올 때 웃지 않도록 양해를 구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려는 사람이 있을 때,
그들의 힘든 점을 따뜻하게 잘 들어줄 수 있고
만약 잘 들어주는 것에 한계가 있을 경우에는 외부에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앎으로서
여러분 자신이 자살예방을 위한 훌륭한 도우미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지요.
정식으로 학교수업 중에 자살예방에 대한 교육을 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고,
자살예방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필요했기에
급히 여러분의 귀중한 방과 후 시간을 뺏을 수 밖에 없었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다행히 진지하게 제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여러 학생들의 모습에
단 한번의 시행착오만으로 빨리 방향을 잡게된 것에 감사했고,
앞으로 1시간짜리 지경주식 자살예방교육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방향이 잡혀서 기뻤습니다.

비록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시범교육이지만, 제 이름을 걸고 단독으로 진행하는 교육인만큼
좋은 만남이 되도록 1시간짜리 mouserace식 자살예방교육을 이끌어 가려고 하고
이번 자살예방교육이 정치적인 이유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시범교육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시고,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세요...)




*** 아래는 2009년 4월 11일에 올리는 글입니다 ***

이 글을 올린지 어느덧 3년이 지나갑니다. 
2006년의 시범교육은 시범교육으로 끝났고, 그 사이에 여러 연예인과 청소년 자살 소식은 계속 이어졌네요...
지역 정신보건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의무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을 위한 정신건강사업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 속에서 저, 그리고 다양한 분들이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게 되겠지요.
생각해보면 어쩌다 떠밀려서 진행했던 자살예방교육이었는데,
그 경험이 저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해주었고 대학원에서 평생교육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고 헛된 경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