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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그리고 공부

누구한테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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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9일의 기록.

사진은 어제 구로파랑새지역아동센터에서 드라마만들기를 진행하던 중에 찍어본 셀카. 울고 있길래 옆에서 달래주었더니 내 품에 안겼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어서 사진기록으로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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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한테 배웠어요?"

 

'누구한테 배우셨어요?'가 아닌, 말 그대로 '누구한테 배웠어요?'는 심리극, 사회극, 역할극, 연극치료, 드라마치료 활동하면서 참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다. 질문에 답하면 곧바로 자신은 누구에게 배웠는지에 대한 힘찬 답변이 돌아왔다.

 

이 질문은 '대단한 전문가에게서 배운 자부심', 그리고 '대단한 전문가와 알고 지내는 자부심'을 전해주기 위한 예고편이었다. 예고편 다음에는 자신의 경력과 지식을 내세워 가르침을 전해주려 했다. 때론 '개나 소나~'라는 말도 들었고, 나 같은 무자격자들이 함부로 활동하지 못하도록 국가에서 막아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내가 90년대 후반에 전해들은 '대단한 전문가'는 항상 두명이었기에, 이 두분이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인 줄 알았다. 그러다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가 되더니, 언젠가는 열손가락이 넘으면서,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늘어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분야도 다양해져서 내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문가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전문가의 공급이 많아졌고, 보다 많은 내담자들이 연극적인 방법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으니 기쁜 일이다.

 

가끔 "이렇게 대단한 분을 모르고 있다니요!"라는 말을 들으면, 얼굴도 본적없고 처음 들어보는 전문가인데,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신뢰와 인정을 받고 있음이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늘 독특한 느낌의 전문가와 예비 전문가(+예의없는 대학생)를 만날 때마다, 마치 처음 만나자마자 나이를 따지고 위아래를 구분하는 것처럼, '누가 연극적인 방법에 대해 더 많이 말할 자격이 되는지' 따지는 경험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보다.

 

요즘에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몇몇 정신과의사 선생님, 여러 정신과 레지던트선생님, 정신보건사회복지사, 상담전문가를 디렉터로 모시고 보조자아 활동을 했고,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을 쌓아가며 틈나는대로 이론공부를 했기에, 실질적으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주신 분들은 저와 함께 했던 수많은 분들과 이론서의 저자, 그리고 내담자들입니다. 특히 내담자들은 저에게 수퍼바이저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할 것 같다.

 

내 인지도가 낮아서인지, 여전히 듣보잡 취급과 갑질을 접하고, 프로그램 진행하는 곳에서 '내가 더 잘 할 수 있으니, 읽고 판단해 달라'는 자기소개서를 목격하고, 심리극 강의를 의뢰한 곳에서 '유명한 전문가를 초빙할 예정이니, 겹치지 않게 강의내용을 수정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기회되면 TV출연도 시도해보고, 공개심리극도 해보고, 제안서와 자기소개서를 만들어 발송해보고, 번역서도 내보고, 논문도 많이 쓰고, 박사학위를 따는게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있나...'라는 생각과 함께, '사용자 측에서 내가 부적절해보인다면, 더 적절한 사람을 쓰겠다면, 강의가 겹치지 않게 해달라면, 그렇게 해주고 떠나는게 낫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 자신이 이 바닥에 부적절하고, 생존경쟁에 응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연극적인 방법과 관련해 사사받은 적 없고, 체계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다. 그리고 연륜과 경험을 내세워 수퍼바이저가 될 생각이 없다.

 

만약 교류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서로가 서로의 반영자가 되자고 요청하여, 서로의 경험을 안전하게 주고받고 싶다. 당신의 경험을 존중하고, 당신의 경험을 통해 내 경험을 나누면서, 서로의 경험을 함께 비추어보고 싶다.

 

'자칭 전문가',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의 무능과 변명과 욕심은 비판할 수 있어도, 경험과 이론을 덧칠해 연극적인 방법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하거나 주입하고 싶지 않다.

 

체계적인 교육을 하는 기관에서 강의하고 수퍼비전 줄 사람을 찾는다면, 체계적으로 배워서 활동해온 사람을 섭외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특정 기관의 호스트가 되거나 소속되어 '정통'을 주장하고, 다른 단체들과 힘겨루기 할 생각이 없다. 그런 일에 시간과 힘을 쏟아붓느니, 보다 널리 연극적인 방법을 전하고 내담자들과 의미있는 만남을 갖는데 집중하고 싶다.

 

나는 내가 진행하는 연극적인 방법을 '지경주식 방법'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연극적인 방법이 적절한 내담자라고 해서, 모두가 반드시 '지경주식 방법'에 적절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전문가와 함께 하는 것이 참만남에 보다 더 가까울 수도 있다. 또한 내담자의 참만남 뿐 아니라, 연극적인 방법으로 먹고 살거나 먹고살려는 사람들 간의 '출신과 전공을 초월한 참만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연극적인 방법이 널리 활용되기를 원한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