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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그리고 공부

집단프로그램과 간식

몇년전 연극치료를 공부하는 연극인들과 '간식제공'에 대해 짧게 의견을 나눈적이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 오신 연극치료 전문가께서는 집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왜 간식이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셨고, 이미 학교나 복지관에서 연극활동 경험이 있던 연극인들은 왜 간식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나 또한 왜 간식을 준비하는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간식'이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 또 다시 간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외부기관의 의뢰를 받아 집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러 갈 때 가끔 목격하는 장면이 있다. 집단 프로그램이 끝나고 담당자가 대상자들에게 참석태도를 구두평가한 뒤 다음부터는 열심히 프로그램에 참석하라며 간식을 나누어주는 모습인데, 나는 이 모습에서 '돌고래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돌고래쇼에서 보여주는 동물의 모습은 조련사와의 교감과 '먹이'라는 강화물의 결합된 결과라고 한다면, 집단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대상자들과 담당자간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때로는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직접 간식을 나눠주라고 담당자가 요청할 때도 있는데, 갑작스럽게 조련사 역할을 맡게 된 것 같아 불편할 때가 있다...

 

내가 직장에서 집단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간식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굳이 간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이다.

 

집단 프로그램 진행시 간식은 대상자를 끌어들이는 '유인물'이나, 끝까지 자리를 지킨 것에 대한 '성과물'의 역할을 많이 맡는 것 같다. 그런데 때로는 담당자의 입장에서 '프로그램 대상자의 일정 숫자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한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할 때도 있다.

 

어쩌다 간식의 양과 질에 따라 내가 진행하는 집단 프로그램이 크게 영향받는 경우를 목격하면, '나를 만나 함께 프로그램을 경험하기 위해 여기 오는게 아니라 간식받으러 온 사람이 많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주객이 전도 되었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왜 간식 때문에 흔들려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때로는 간식 제공권을 갖고 있는 담당자의 영향과 간섭이 발생한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어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나는 프로그램 대상자가 프로그램에 흥미를 갖고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때로는 간식만 받기 위해 오는 대상자가 불편하다. 물론 처음에는 간식을 받기 위해 왔다가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끼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럴 때는 차라리 간식보다는 담당자의 추천을 통해 내 프로그램에 참석해주기를 더 희망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의뢰를 받은 프로그램들은 대상자들의 결정에 의거해 직접 프로그램과 강사를 결정한 경우는 아주 아주 드물고, 대부분 담당자에 의해 모든 것이 다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대상자들과의 만남은 수동적인 상황이 많다.

 

이럴 때 간식은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간식을 활용하지 않고도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자들과 담당자 간의 보다 깊은 유대감을 갖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집단에게는 간식이 낙인연습 혹은 낙인확인의 매체가 될 수도 있고, 간식이라는 물질적인 강화물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자칫 '인간 대 인간의 참만남'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든 간식 제공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간식이 대상자와 담당자간의 '무언의 거래물'로 활용되는 것은 비인간적인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런 용도로 간식이 활용되는 것에 반대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황은 대상자와 담당자간의 '신뢰구축'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서, 대상자와 담당자 간의 끈끈한 신뢰감이 간식 대신에 많이 활용되는 것이다.

 

나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대상자와 담당자 간의 '인간적인 만남'은 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여러가지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기대한다.

 

내가 지금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집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인간적인 만남은 물질적인 만남보다 더 의미있다!'라는 나의 신념을 증명해보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