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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그리고 공부

심리극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강의마치고, 오송역 부근에서 찍은 사진

 

 

2019년 10월 31일에 작성한 글.

 

언젠가 한 대학생이 5.18 트라우마를 심리극으로 다룰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나라면 시도하지 않을 거라고 답했다.

 

답이 너무 간단명료 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설명해보았다.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5.18 주동자와 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데다, 왜곡된 과거가 담긴 책을 출판하고 뻔뻔하게 망언하는 현실에서, 심리극은 오히려 국가적인 폭력을 경험하신 그분들에게 부정적인 자극을 주기 쉬울 것 같고, 내가 최선을 다해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해도 일시적인 진통제 역할 밖에 못할 것 같다...

 

심리극 보다 더 분명한 해결책은 주동자와 관련자들이 처벌받는 것이다...

 

사회극으로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고 함께 실천으로 옮기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나의 사회적 지위로는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분들에게 심리극이나 사회극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대신, 주동자와 관련자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죄없는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실적을 올린 공안검사들이 처벌받지 않고, 당당하게 사회적 지위를 누리면서 잘 먹고 잘 사는 현실에서, 국가적인 폭력으로 인해 부당하게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하고 갇히고 오랜 세월 부당한 취급당한 분들에게도...

 

또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처벌받아야 할 몹쓸 인간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현실에서, 세월호 참사로 국가적인 폭력을 (계속) 겪고 계신 그분들에게도...

 

오늘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심리극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처벌받아야 할 인간들이 빨리 처벌받도록 지속적으로 촉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3년전,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조언이 생각난다. "사이코드라마는 여러 정신과 치료방법 중 하나일 뿐이고, 만능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심리극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주인공과 관객에게 감동과 솔루션을 주는 조건을 걸고, 이벤트성 사이코드라마를 제의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생각이 많은 10월의 마지막 밤이다. 잠들 수 없는... 슬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