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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기

연극 반신 (Half Gods)

 

 

 

 

2014년 9월 2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반신 관람함.

사전정보없이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감상했다.

 

신비롭고 흥미로운 일본만화 한편을 재미있게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출, 연기, 무대, 음악, 무용, 조명, 소품의 멋진 조합에 감탄했다.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이미 연극은 시작되어 있었다.

대본연습을 앞두고 몸을 풀거나 잡담을 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미지의 연극을 경험하게 될 관객들의 마음을 좀 더 편안하게 이끌어주는 것 같았다.

 

이 연극의 공간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상징하는 연출가와 배우들의 연극연습 공간,

또 하나는 샴쌍둥이가 살고 있는 연극 속 인간세상을 상징하는 공간,

다른 하나는 연극 속 샹쌍둥이를 데려가려는 요괴들의 공간.

 

연극의 초, 중, 후반에 나오는 배우와 연출가의 연극연습 공간은

연극 속 현실과 상상을 뚜렷히 구분하면서 쉬어가는 의미도 있어보이고,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잠시 점검해보는 의미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샴쌍둥이의 연극 속 인간세상을 상징하는 공간은

늘 수라가 마리아를 돌보아주면서도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수라의 안타까운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요괴들의 공간은 어쩌면 힘든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똑똑하고 논리적인 수라가 만들어낸 

'상상의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의 공간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된 것은

독특하면서도 묘한 균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대 중심에 놓인 나선계단,

수학자가 풀려고 했던 나선방정식,

뫼비우스의 띠,

벤젠의 6각 고리,

1/2 + 1/2 = 2/4,

연극연습과 연극공연,

인간세상의 공간과 요괴들의 공간,

과거의 가정교사와 미래의 가정교사,

수학자와 의사 쌍둥이,

두 고모를 통해 볼 수 있는 독특하면서도 묘한 균형은

마리아와 수라가 존재하는 세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각각 대립적이면서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이 연극의 주인공인 마리아와 수라의 모습을 통해 

Homo duplex(이중인, 이중적인 인간)라는 단어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내가 이 연극을 사전정보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을 따라 마치 깊은 동굴을 함께 탐험해보는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인 것 같다.

등장인물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숨겨진 비밀들도 함께 알게 되고,

숫자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이 내게는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이 연극을 통해, 심장을 공유한 어느 샴쌍둥이의 슬픈 이야기를 알았다. 

그리고 이 슬픈 이야기가 요괴들을 통해 신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했고,

등대의 전설로 새롭게 태어난 그 누군가를 위해 추모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런 뒤 신화와 전설 속의 인물들은 연극 연습에 몰두하는 연출가와 배우로 되돌아왔고 

나는 신화와 전설을 목격하고 경험한 사람에서,

연극을 보러온 관객으로 되돌아와 현실의 극장문을 나설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신화와 전설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