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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치료

국립서울병원 심리극, 기다림

 

2016년 2월 5일의 기록.

 

국립서울병원에서 심리극을 진행한지 두달째가 되었다.

 

다수가 침묵한 상태에서, 어떤 이는 TV에 나오는 사람처럼 무대 위에 올라가 화내고 소리지르고 울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어떤 이는 할말이 없다고 했다. 어떤 이는 무대 위에 올라가기 싫다고 했다. 어떤 이는 제발 좀 시키지 말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이번 심리극은 제가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도와주세요."

나는 주인공이 되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제의했고, 모든 관객들과 최소 한번 짧게라도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담배를 소재로 이야기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주인공이 될 의사가 있다고 말한 분도 있었고, 관객역할만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지 문의도 받았고, 지금처럼 편안한 분위기라면 좋겠다는 의견도 들었고, 기억력이 점점 안좋아져서 대사를 까먹을까봐 걱정된다는 고민도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또한 담당간호사님께서 나의 심리극 진행을 통해 늘 배우고 있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며칠전 두드림마음건강센터 심리극 시간에는 대부분이 졸거나 생각에 빠진 모습을 보여서, 심리극 진행 대신 웜업위주의 진행으로 전환해 졸음도 없애고 자신있게 자기표현하는 시간을 가진 기억이 난다.

 

1991년 처음 심리극을 접한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내가 인식하고 있는 심리극은 타인에 의해 이미 설정된 것이었고, 나는 그 심리극을 소화하기 위한 시행착오를 20년 넘게 경험해왔고, 이제는 심리극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심리극을 통해 삶의 즐거움과 깊이를 경험하기도 했고, 따분함과 두통을 경험하기도 했고, 각본없는 멋진 드라마를 만드는 뛰어난 능력자들을 존경하기도 했고, 무능한 자의 오만을 경험하기도 했고, 경이로운 드라마를 경험하기도 했고, 치유를 경험하기도 했고, 또 다른 상처를 경험하기도 했다.

 

보고서에 쓴 것 처럼, 나는 참석하신 분 모두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심리극에 동참하실 수 있도록 진행하고 싶다. 그리고 참석하신 분들의 귀한 말씀을 잘 참고하고 반영하고 싶다.

 

문득 심리극이 비행기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조종사가 되어,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진행하는 심리극이라는 비행기에 탑승한 주인공과 보조자아와 관객들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잘 모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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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을 추억하며.

 

이제 국립정신건강센터(국립서울병원) 심리극은 ‘재미없고 이상한 연극’이라는 이미지에서 서서히 벗어나,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 기쁘다.

 

보다 많은 내담자들이 심리극에 동참하고, 심리극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적극적으로 공유해주실 그날까지, 이곳에서 내담자를 기다리는 것은 나에게 매우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