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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치료

직면과 역할벗기

대학원 공부 덕분에 실컷 동화책을 읽는다.

최근 다시 읽은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과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 덕분에, 심리극 진행시 일어날 수 있는 직면과 역할벗기를 생각해보았다.

신속하고 강력하게 주인공의 치부를 드러내고 직면시키는 심리극은 '주인공을 벌거벗은 임금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심리극 진행은 할 수 없다. 

마음의 옷을 벗는 것은 주인공의 선택과 의지라고 생각하기에, 치료 혹은 카타르시스를 내세워 강제로 주인공을 문제에 직면시키려는 시도는 주인공을 위한 심리극이 아니라 디렉터와 관객의 욕구충족을 위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아니기에, 책임질 수 없는 일은 함부로 못하겠다.

마음의 옷을 벗는 것과 다시 입는 것은 주인공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기에, 가급적 주인공이 주도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주인공인 ‘벌거벗은 임금’이 대중 앞에서 예상치 못한 원치않는 현실을 직면했듯이, 심리극 관객 앞에서 노출된 주인공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직면시키는 연출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리극 주인공을 벌거벗은 임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이러한 자세가 반영된 나의 심리극 때문에, 내가 답답한 심리극 진행자, 우회적인 심리극 진행자, 너무 느릿한 심리극 진행자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역량 한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화 속 벌거숭이 임금은 ‘임금의 권력’을 갖고 있지만, 내가 만나는 심리극 주인공들은 대부분은 권력이 없는, 힘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심리극 무대 위에서 벌거숭이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심리극은 ‘주인공을 빨리 벌거숭이로 만드는 것’을 겨루고 과시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자신감 넘치고 열정적인 진행을 보여준 심리극 디렉터들, 그리고 그들로 인해 벌거숭이가 되었고 끝까지 존중받지 못한 채 무대 밑을 내려갔던 힘없는 주인공들을 기억한다.

동화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주인공 맥스는 인간세상을 떠난 말썽쟁이였지만, 결국 자발적으로 귀가를 결심하고 늑대 탈을 벗는다.

맥스는 나에게 이상적인 심리극 주인공이다.

나는 심리극 주인공을 힘없는 벌거벗은 임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주인공이 심리극을 마무리 지으면서, 맥스의 마지막 모습을 경험해보도록 돕고 싶다. 그리고 심리극 주인공이 무대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주인공이 되어 인간세상과 공존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