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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치료

적절하지 못한 심리극 진행자로서 이의제기

다음은 ‘전문 연기자 겸 보조자아와 훈련된 보조자아에 대한 반감’이 감지되는 어느 심리극 권위자의 글 입니다.

 

"보조자가 서투르게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자발성이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 또한 주인공이나 디렉터에 대한 텔레가 작용하고 있거나, 자신의 개인적 문제, 잘못된 이해 등으로 부적절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때로는 다른 사람을 선택하도록 요청하고 다시 관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전문 연기자나 훈련된 전문가에게 보조자 역할을 맡기는 행위는 적절하지 못하다."

 

위 주장에 의하면, 보조자아를 훈련시키고 때론 일부 환자들을 보조자아로 훈련시킨 저는 ‘적절하지 못한 심리극 진행자’입니다. 저는 적절하지 못한 심리극 진행자로서 이의를 제기합니다.

 

문득, 또 다른 어느 심리극 권위자가 연예인을 보조자아로 활용했다가 부적절한 상황을 경험한 시행착오의 기록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자는 병원에서 훈련된 보조자아와 지속적인 심리극 경험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1991년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장기적인 심리극을 경험해온 사람으로서, 그동안 경험한 정신건강의학과의 독특한 상황을 반영해보면, 위 주장은 일반화 하기에 설득력이 낮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훈련된 전문가'라는 용어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입원병동 심리극에서 '역할 수행이 가능한 입원환자를 만나는 것'은 복불복이었습니다. 진행자는 참가자들의 다양한 변수와 여러 제한된 상황을 감안하여 심리극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럴 때 훈련된 보조자아는 큰 힘이 됩니다.

 

제가 이드치연구소를 만들게 된 계기는, 저의 심리극 진행을 도와주신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서비스 제공’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비스 내용은 내담자의 병리적인 문제에 대한 추가설명과 해설, 심리극 기법에 보다 익숙해지게 위한 테크닉 연습, 자신의 정신건강을 점검해보고 향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심리극 진행을 도와주시는 분들을 중심으로, 감사의 뜻을 담아 아무 조건없이 서비스를 제공했고(저는 돈을 요구하거나 특정 코스를 밟도록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후 이드치연구소 모임과 교육과정으로 확대했습니다.

 

저는 늘 제가 진행한 심리극에 참석해주신 내담자들 뿐 아니라, 보조자아 여러분에게도 함께 해주심에 감사인사 드리고, 원활한 심리극 진행에 큰 도움준 것에 한번 더 감사인사합니다. 이것은 심리극 진행자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심리극은 화려한 퍼포먼스와 카리스마 넘치는 진행자의 모노드라마가 아닌, 모두가 함께 하는 집단치료입니다. 저는 ‘긴장을 유발하고 방어기제를 자극하는 심리극’보다는, 모두가 마음 편하게 동참할 수 있는 ‘마음편한 심리극’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심리극에서 훈련된 보조자아는 집단의 응집력을 보다 높여주는 고마운 촉매와 같은 존재입니다.

 

훈련된 보조자아는 '앞에서 잘 끌어주고 뒤에서 잘 밀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대상은 심리극에 참가한 환자들이고, 때론 심리극 진행 경험이 적은 디렉터가 되기도 합니다. 훈련된 보조자아는 디렉터에게 안전하고 적절한 극진행 연습을 돕기도 합니다.

 

아담 블레트너의 번역서를 읽어보면, 훈련된 보조자아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어떤 역할은 역할연기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연기를 할 때 최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에 동의합니다.

 

심리극 관련 자료를 읽다 보면, 국내 심리극 권위자의 글에서 유난히 강한 주장(나처럼 해봐라 요렇게!)이 느껴져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지나치게 개인적인 주장이 일반화 되고, 한국형 사이코드라마로 굳어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외국 전문가들의 글이 마음 편합니다. 언젠가 저도 심리극과 관련된 마음 편한 기록을 남기고 싶습니다.

 

제가 공유하는 글이 '심리극을 알아가는 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된다면 기쁘고 영광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