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치료

상계백병원 심리극

 

 

 

 

이번주 수요일에 진행했던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 심리극을 떠올려보며...

입원한지 이틀되었다는 청소년이 자신이 준비해온 자작소설을 연극으로 꾸며보고 싶다며

일방적으로 스토리를 지리멸렬하게 늘어놓자, 한명만 남고 나머지는 다 나가버렸다.

주인공이 자신이 쓰레기 같은 존재라서 사람들이 나가버린 것이라고 말했고,

나는 그 사람들은 지금 환자로서 해결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나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혼자 열심히 머리 속에서 넘쳐나는 자작소설의 스토리를 관객들에게 쏟아붓고

결국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혼자서 일인 다역을 연기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나는 관객의 역할을 맡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았고 여러번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고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말해주면서 주인공의 연기에 호응해주었다.

자신도 자신의 소설의 상세한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데다

떻게 끝나게 될지 모르는 막연하고 광대한 스토리였지만

지금 이 순간 주인공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만든 스토리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1) 머리 속에서 샘솟는 무언가를 연극적인 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사람 앞에서 표현해보는 것

2) 이러한 표현을 이해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

 

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심리극 시간을 절호의 기회로 삼은 것이었고,

나는 그 절호의 기회를 안전하게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넘쳐나는 생각을 연극 표현하는 와중에서도

관객들과 무대를 계속 살피면서

안전하게 누울자리를 잘 찾아 누웠고,

쓰러질 자리를 잘 찾아 쓰러졌고,

애로장면은 18금이 넘지 않도록 수위를 잘 조절했다.

다행히 한정된 시간 안에 자신만의 연극을 마친 주인공에게 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잘 조절해 연기해 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인 표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좀 더 구체화 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고 의견을 전했다.

주인공은 내가 한 말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끝까지 함께 했던 유일한 환자 관객에게 소감을 부탁하자 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집단프로그램실을 나가면서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어렸을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라고 말했다.

이번 심리극을 진행하면서

이야기치료에서 말하는 not-knowing position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정신병리적 증상으로 인해 발생한 지리멸렬한 사고의 표현으로 간주했을 것이고

주인공이 교체되거나 정신의학과 환자의 지루한 원맨쇼로 끝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한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같은 공간 안에서,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주인공이 되어 연기하고

누군가는 주인공의 연기에 집중하고

누군가는 지루하고

누군가는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각자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다음에는 어떤 사람이 주인공이 되고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기대된다.

 

 

 

* 책 홍보를 겸해 '사회복지사가 말하는 사회복지사' 표지를 함께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