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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알고보니 근거없는 글

인간은 모든 생물 중에서 환경의 영향을 받아 달라질 가능성이 가장 큰 생물이며 그 가능성은 어리면 어릴수록 강하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걸을 수 있는 선천적 경향, 말을 할 수 있는 선천적 경향, 문자를 해득할 수 있는 선천적 경향,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선천적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얼마나 잘 걷고, 말하고, 읽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크게 달라진다. 이것을 가소성(可塑性)이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를 인도의 ‘늑대어린이’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20년 10월 17일에 2세된 ‘아마라’라는 여아와 8세된 ‘카마라’라는 여아를 늑대굴에서 구출하여 양육한 바 있다. ‘아마라’는 1년 후에 죽었고 ‘카마라’는 9년 후에 죽었다. 처음에는 이 두 여아는 육체만이 인간이고 행동은 늑대와 흡사하였다. 사지(四肢)로 기어 다니고, 생고기만 뜯어 먹고, 늑대 모양으로 소리를 지르면서도 늑대 소리와도 다르며 사람의 말소리도 아니었고,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찾아 다녔으며, 고기냄새에 매우 예민했고, 음식은 땅에 놓고 핥아 먹기만 하며 옷을 입히면 찢어 버리는 등 인간의 접근을 싫어했다. 그러나 그 후 인간과 함께 생활함에 따라 점차로 인간적인 행동으로 변하였다.

또 하나의 예를 1988년 3월 20일자 조선일보 기사내용에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부모의 무관심으로 세퍼트 암컷이 돌봐온 4살짜리 서독 어린이가 개와 같은 행동양식을 보이고 있고, 벌거벗은 채로 닭뼈를 씹으며, 세퍼트를 따라 기어 다니는 것을 본 할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하여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흐르스트 베르너’라는 이 어린이는 지금도 개처럼 짖고 코를 킁킁 거리는 것은 물론 엎드린 채 팔을 앞으로 쭉 뻗고 그 위로 머리를 올려 놓고 잔다는 것. 지난해 그의 집을 방문했던 사회사업가들에 따르면 30세 된 아버지가 실직 상태라 가정 형편이 엉망이었으며 부모들은 그를 개와 함께 두고 하루 종일 집을 비우곤 했다는 것. 위의 두 예화를 보면 인간이 어릴 때 가소성(可塑性)이 얼마나 큰 지에 대하여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즉 인간은 어릴 때 동물 세계에서 자라면 동물같은 행동 양식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동물을 인간사회에서 길러도 인간같은 행동양식을 배우지 못한다. 그 까닭은 동물에게는 가소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소성의 차이는 인간의 경우는 어린이와 어른의 행동상의 차가 대단히 큰 데 비하여 동물은 새끼와 어미의 행동차가 거의 없는 데 기인한다.

<중략>





위 글은 어느 홈페이지에 실린 어느 교육전문가의 글이다.

대학원 과제 중에 아마라, 카마라와 유사한 사례를 찾는게 있어서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이 글을 찾았다.
서독에서 발견된 아이에 대한 사례는 내가 찾던 것이라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조선일보 1988년 3월 20일 기사요약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휴대폰으로 요금 지불하고 PDF 신문보기 서비스로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그런 기사는 없었다.

우연히 발견한 야생의 아이들 사례를 모아둔 사이트에서도 서독의 사례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글은 뭐지?


앞으로 글을 쓸 때는 분명한 근거가 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관련 사이트>

1. 어린이의 가소성과 불교적 환경 - 문제를 제기한 글
http://bud.buddhapia.com/view/contents.asp?m_seq=99982468

2. 조선일보 1988년 3월 20일 신문기사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index.jsp?Y=1988&M=3&D=20&x=67&y=6

3. 야생의 아이들 사이트
http://www.feralchildren.com/en/children.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