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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치료

강화필병원, 도담병원 심리극 - 2015년 11월 24일

 

 

 

 

 

 

 

2015년 11월 24일, 강화필병원 심리극을 생각해보며.

 

 

알코올 입원환자 대상의 심리극을 시작하면서 한 분의 제의로 재판장면을 설정해보았다.

제의하신 분은 자신이 변호사 역할을 자청했고 다른 분들에게 역할을 맡아달라고 권했다.

그분의 제의대로 '남편이 무분별하게 술마시고 가족들에게 행패부린 죄를 묻는 장면'을 설정했고

남편, 부인, 변호사, 검사, 판사, 양측 증인, 총 7명이 무대에 등장하기로 결정했다.

참가자의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무대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평소 구경만 하겠다고 하신 분들도 동참하게 되었다.

 

검사역할을 찾던 중 60대의 한 환자에게 다가가 문의하려는데,

그분은 갑자기 나를 보자 "안해요! 안한다구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으니 끝까지 들어보고 대답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분은 여러번 "안해요! 안한다니까!"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이런식으로 하면 병동으로 올라갈꺼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내 말을 끊고 화내는 것에 당황스럽다'고 말해주었고,

'선생님에 의해 중단당한 내 말'을 꼭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은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병동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담당사회복지사의 설득으로 그분은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았고,

나는 그분에게 "지금 검사역할 할 분을 찾고 있는 중에 선생님께 문의할 생각이었지만,

선생님께서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고 의사를 밝히셨으니 관객으로 계셔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제가 선생님께 하려고 했던 말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심리극을 진행하면서,

늘 여러분의 의사를 존중하려고 애써왔고

어느 누구에게도 지시하거나 명령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었음을 언급했다.

그분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이 종료되면서 자발적으로, 혹은 추천을 받아 순조롭게 역할이 정해졌다.

마지막으로 판사를 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까 나에게 화를 내셨던 환자께서

처음 심리극에 참석한 분을 판사로 적극 추천해 결정되었고 재판장면이 시작되었다.

 

재판내용은 변호사를 맡은 환자의 주도로 진행되었고,

검사도 판사도 남편을 옹호하는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평소 아무말 없었던 환자도, 오늘 처음 참석한 환자도,

나름 자신의 역할을 활용해 주인공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진행되도록 내가 흐름을 끊지 않은 것은

모두가 한편의 즉흥적이면서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고 있었고,

아내와 아내 쪽 증인을 맡은 두 환자께서 정말 아내와 아내의 언니 역할을 잘 수행해주어

연극의 균형을 맞춰주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진행도중 내가 아내역할을 맡은 환자에게

"남편을 금치산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어떨까요?"라고 말하는 순간,

참가자 모두가 순간 눈을 크게 뜨더니

'금치산자까지는 하지 말자'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심리극 장면을 설정했고 변호사 역할을 맡았던 70대의 환자는

변호사, 검사, 판사가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소망을 심리극 시간을 통해 진행해보면서

'이렇게 놀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말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연극적으로 안전하게 놀아보는 시간이 심리극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아까 화를 냈던 60대의 환자는 요즘 기분이 안좋은 상태에서

선생님께 화를 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심리극이 끝나고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상담해야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환자의 손을 두손으로 감싸잡고,

설명해주셔서 감사하고 이해한다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 몇달간 심리극에 함께 하면서 의도적으로 선생님을 불편하게 한 적이 없었음을 언급했다.

 

다음주 월요일 강화필병원 심리극은 어떤 만남과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된다.

 

 

* * * * * * * * * *

 

 

도담병원 심리극을 생각해보며.

 

이번에는 10대 후반의 환자가 주인공이 되었다.

'세번째 주인공'을 경험하는 주인공은 약 7가지의 이야기를 뒤섞어 말했고,

말하던 도중 갑자기 일인다역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혼자만의 연극에 몰두했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주인공의 독특한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을 안심시키는 것과

혹시라도 주인공이 돌발적으로 다른 환자들을 째려보고 공격하지 않도록

언제든지 개입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이 특정 환자들을 째려보는게 감지되면,

재빨리 당사자들에게 고개를 돌려 주인공과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부탁했다.

 

주인공의 연기를 보고 있으니, 계속 다른 인물이 되어 말하는 것 같았고

마치 몇초 간격으로 TV채널을 돌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빨리 다른 인물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한 인물을 상대적으로 길게 연기하기도 했는데,

주인공의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을 계속 관찰해보니 반복된 연기에서 특정 인물들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일본만화에 등장하는 특정 캐릭터의 대사들을 계속 말하고 있었다.

주인공에게 '연기하는 모습에서 만화 나루토와 원피스가 생각난다'고 말해주자,

주인공은 맞다고 외친 뒤 나루토와 원피스의 특정 장면을 설명하면서

잠시 울기도 했다가 웃기도 했고 한 환자를 쳐다보며 복수를 다짐하는 대사를 말하기도 했다.

 

주인공이 혼자만의 연기를 하는 동안,

나는 관객들에게 '평소 병동에서도 주인공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 문의했다.

여러 관객들이 주인공은 평소 혼잣말을 하면서 울고 웃는다고 알려주었고,

"아~ 저 애가 평소 하는 말들이 일본만화의 한장면이란 걸 이제 알았어요..."라고 말해주는 분도 있었다.

그러자 주인공은 갑자기 더 밝은 표정과 큰소리로 혼자만의 연극을 계속했다.

그리고 연세지긋한 어르신께서 주인공이 자신을 일본인으로 대해달라며 일본이름을 알려주었는데,

실수로 한글이름을 불러주었다가 나쁜 사람 취급을 받은 적 있다고 말씀해주었다.

그 순간 주인공은 자신의 일본식 이름을 두개 외친 뒤,

이왕이면 두 이름 중에 첫번째 이름을 불러달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관객들에게, 지금부터 주인공의 이름을 일본이름으로 불러주자고 제의했다.

몇몇 분들이 주인공은 한국사람인데 왜 일본이름을 불러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이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일본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해왔고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이를 무시했을 것 같으니,

우리만이라도 주인공이 원하는대로 일본이름을 불러주자고 제의했다.

그 순간 주인공의 표정과 목소리가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관객들에게, '혼자만의 연극을 통해 주인공은 이 세상과 협상하는 것 같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현실을 직면시키고 정신차리라고 말하는 것은 가족과 치료진들의 역할인 것 같고,

심리극에 함께 하는 우리는 '혼자만의 연극'을 존중해주자고 의견을 제시했고,

관객들은 나의 의견과 주인공의 연극을 존중해주었다.

그래서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가만히 주인공의 연극을 지켜보았고,

갑자기 주인공이 자신을 째려본다는 판단이 들면 살짝 시선을 옮겼다.

 

끝나고 관객들에게 혹시라도 주인공이 자신을 째려보면 맞대응 하지 않고

살짝 시선 옮기는 것에 대해 어떠했는지 물어보니

불편하지 않았다는 답변과 병동 안에서도 주인공과 지낼 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심리극이 끝나고 어느 젊은 환자는 입원 전에 원피스와 나루토를 만화책으로 읽었기 때문에

주인공의 이야기를 좀 더 잘 알아듣고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고,

 

나이지긋하신 한 환자는 평소 같은 병실에서 주인공을 챙겨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식사를 챙겨주는게 제일 힘들다며, "밥 먹어라~"를 일본어로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짦은 일본어 실력을 발휘해 식사와 관련된 간단한 표현을 알려드렸다.

 

원피스 1권과 나루토 1~5권까지 읽은것이,

그리고 일본어를 조금 알아듣는 것이 심리극 진행에 큰 도움이 되어 다행이었다.

기회되는대로 마저 읽어두면,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