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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서태지와 나

추억 속의 어떤 이에게 갑자기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22년전이었다.

당시 자원봉사 일정에 맞춰 수업 시간표를 짤 정도로,

나는 정신병원 심리극 자원봉사에 푹 빠져있었다.

 

그때는 용인정신병원과 시립정신병원(시립은평병원)에 나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시립정신병원 심리극이 끝난 회식자리에서

처음 자원봉사자로 참석한 여자 연극인이 나에게 "너 몇살이냐?"라며 반말로 물어보았다.

내 나이를 말해주자, 그녀는 내가 서태지와 나이가 비슷한지 확인한 뒤

"야, 서태지는 저렇게 잘 나가는데 넌 여태 뭐했니?"라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오늘 진행된 심리극에 대해 토론하는데 유난히 내 의견만 묵살했고,

갑자기 나와 별 상관도 없는 '특정 요즘 어린 것들'에 대해 비판하면서

나에게 인생선배로서 열과 성을 다해 일방적으로 원치않는 충고를 늘어놓았었다.

그때 나는 아무런 대답도 반문도 하지 않았고 술주정에 가까운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녀는 심리극 자원봉사자로 몇번 나오다가 소식이 끊어졌다.

몇년 뒤 알고보니
그 연극인은 당시 대학로를 방황하던 많고 많은 무명의 연극인 중 한명이었고,

그 극단을 떠난 이후로 소식이 없다고 들었다.

그 연극인 덕분에 나는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누구에게나 존대하는 것이 가장 보편타당하고 무난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타인과의 뜬금없는 비교가 얼마나 무례한지도 자연스럽게 안 것 같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하나의 부정적인 모델이 되어준 그 분은 요즘 무얼하고 있을까?

외모와는 달리 상당히 허스키했던 목소리,

늘 나를 싸가지 없는 어린 것으로 사전설정해 일방적으로 충고하던 모습,

술만 마시면 가수 김현식이 죽었다며 울던 모습이 텍스트처럼 기억날 뿐,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분을 다시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서태지는 여전히 잘 나가고, 저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요.

그리고 저는 여전히 지금 이 순간 제 자신이 참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