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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그리고 공부

PTSD 경험

 

 

 

 

 

 

2015년 9월 6일, 남양주시 별내면에 있는 어느 농원을 산책하면서 본 배나무.

기존의 배나무 위에 새롭게 뻗어 올라가는 줄기가 인상적이었다.

원예를 계속 공부했었다면 사진 속 상황을 보다 과학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었을지도...

 

PTSD를 다루는 일을 종종하면서,

또 여러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PTSD에 공감하면서도,

정작 내가 겪은 PTSD 경험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지난주 화요일 오후,

집단 프로그램 진행도중 왼쪽 후방에서 갑작스럽게 달려든 정신장애인에 의해 폭행당했다.

나는 정신보건사회복지사 수련 때 수퍼바이저에게 배운 그대로

최대한 내 몸을 보호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폭행을 막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폭행이 마무리 된 뒤 나는 '내 자신이 치료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려 노력하면서 프로그램을 마무리 지었고, 가해자와 대면했었다.

 

원래는 9월말까지 '드라마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여기서 중단하는 것이 어떨지 기관 측에서 먼저 제의해주셨다.

나는 예정대로 끝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고

가해자가 계속 프로그램에 참석한다면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의 폭행에 대해 보다 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거절했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보다 성숙하게 대처해보고 싶은 나의 생각을 공유했었다.

 

비록 눈에 띄는 상처도 없고 통증은 일주일만에 사라졌지만,

어쨌거나 내가 겪은 일은 단기적인 PTSD 경험에 해당되고,

현재 나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계속 줄 정도로 내게 중요한 일임을

굳이 애써 이성적으로 외면하려 했다...

 

폭행이후 예정된 일정들을 무사히 치루긴 했으나,

의욕이 떨어진 상태에서 진행했음을 알았고

보다 잘 할 수도 있었는데 잘 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귀가 후 밀려있는 추가적인 업무(보고서 작성, 계획서 작성, 각종 원고 작업)를 할 수 없었다.

 

여가활동을 통해 기분 전환을 하려고 했지만

영화 보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드라이브도 그다지 큰 효과는 없었다.

 

가장 많이 시간보낸 것은 '머릿속에서 당시 상황을 다양하게 재구성해보기'였다.

그리고 예전 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직원들의 정떨어지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때 그 일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어쨌거나 평소보다 더 '축 늘어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PTSD, 정신적인 상처, 마음의 상처라는 단어를 계속 되풀이해 생각해보면서,

PTSD를 다루는 방법들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지금 상황을 정리해보고

'시간이 해결한다'는 말도 이성적으로 떠올려보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감정과 감성을 존중해주고 싶고,

최대한 '나를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싶다.

 

이왕이면 나중에 이 날의 기억을 회상하게 될 때 쯤에는

기존의 배나무 위에 곧게 뻗은 사진 속 배나무 줄기처럼

지금의 경험 위에 새롭게 뻗어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