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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치료

강서필병원 - 한사람을 위한 심리극

 

 

 

 

2015년 11월 5일 목요일.

 

오늘 강서필병원 심리극을 두번 진행하면서

두번째 심리극은 '한사람을 위한 심리극'으로 진행하고 싶었다.

 

그 사람은 세번의 심리극을 통해 만났다.

이십대 초반이지만 산만한 아이같은 모습 때문에

그 사람은 늘 다른 환자들에게 지적받거나 혼났었다.

 

심리극에 참석할 때마다 그 사람은 자발적으로 주인공이 되었고

늘 한 남성을 지칭해 연애하고 싶다고 했다.

남성에게 양해를 구해 데이트 장면을 시작하면

쑥스러워 하면서 남성에게 조금 말을 걸어보다가 갑자기 그만하겠다고 말하기도 했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갑자기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해서

의도적으로 개입해 끊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갑자기 심리극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들면 인상을 쓰거나 한숨을 쉬거나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말하는 환자들이 눈에 띄었다.

때로는 심리극 진행을 방해하여 내가 주의를 준 적도 있었다.

 

최근 일주일 동안 그 사람이 자주 생각났다.

지난주 목요일 심리극이 끝나고 귀가한 뒤에도,

다른 곳에서 집단프로그램이나 심리극을 진행할 때도, 강의할 때도,

일주일 동안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한명씩 떠올리며 기도할 때도 유난히 그 사람이 생각났었다.

 

오늘 집을 나서면서 '오늘은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초대하자!'고 결심했다.

그 사람이 심리극에 참석하러 오자, 나는 심리극 주인공으로 내정했다고 알렸다.

이후 그 사람은 웃음띤 얼굴로 "주인공 하기 싫은데~"라며 큰소리를 내기도 하고,

의자에 앉은 채 몸을 앞뒤로 흔들기도 하고,

유일하게 친한 것 같은 한 여성에게 계속 말거는 모습을 보였다.

 

주인공이 된 그 사람의 의견대로 처음에는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그 다음에는 늘 그랬듯이 특정 남자환자를 지명해 둘만의 연애장면을 만들어 짧은 극을 진행해보았다.

그 사람이 원하는대로 극진행을 하면서 조금씩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자,

이제는 내 의도를 반영한 극진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관객들에게 무대로 나와서 주인공을 위해 '주인공이 기뻐할만한 한마디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몇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주인공에게 지지적인 말이나 덕담을 전했다.

 

나는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보내달라'는 뜻에서

'주인공이 기뻐할만한 한마디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주인공이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많이 받을 필요가 있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스트로크를 편의상 '반응'이라고 대체하면 괜찮을 것 같다).

 

평소 그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독특한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아보였다.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서 관심받지 못하는 '무 스트로크' 상태를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지만,

긍정적인 스트로크를 별로 받은 적도 없고 쉽게 받을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누구에게나 쉽게 받을 수 있는 '부정적인 스트로크'를 유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심리극은 심리극이라고 하기 보다는

'진행자의 의도로, 한사람에게 긍정적인 스트로크 몰아주기'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 추측과 내 생각이, 내 판단이 적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도적으로 진행한 한시간의 심리극 시간이 그 사람의 삶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