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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그리고 공부

주차, 그리고 사과에 대한 사회기술

어제, 2015년 12월 18일 오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며.

 

오후 두시반쯤 충주에서 올라와 서대문구정신건강증진센터 뒷편 주차장에 도착해,

장기주차된 것으로 보이는 낡은 승용차 앞에 주차했다.

 

차안에서 삽십분가량 휴식을 취했고,

서대문구정신건강증진센터에 올라가 두시간 강의를 했고,

다음 일정을 위해 급히 주차장에 갔다.

 

내 뒤에 주차해둔 승용차에 불이 들어와 있어서 차를 빼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차주에게 빨리 차를 빼겠다고 말하려 하니 차 안에 아무도 없었다.

 

차를 빼려고 하는 순간, 3층에서 왠 여성이 창문을 열고,

"저기요! 앞으로 주차할때는 어디가는지 써놓고 가세요!"라고 외쳤다.

나는 그 여성에게 4층 정신건강증진센터에 강의하러 왔는데,

행선지를 써놓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말없이 창문을 닫았다.

 

차를 운전해 나가는 순간 왠 남성이 고함을 치며 내 차를 따라왔다.
나는 순간 저 남성이 뒷차 차주라는 생각에 얼른 차를 멈추었다.

 

50대로 보이는 남자는 나를 때릴 것처럼 주먹을 쥐어 올리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고,

나는 차에서 내리자 마자 그 남자를 향해 죄송하다고 바로 고개숙여 사과했다.

그 남성은 주먹을 내리고 걸음을 늦춘 뒤,

왜 여러번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냐고 손가락질을 하며 호통을 쳤다.

나는 그 남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도록 경청의 자세를 유지했고,

나에게 한마디 할 때마다 고개숙여 사과했다.

그 남성은 자신의 전화를 안 받은 것에 대한 분노를 여러번 반복표현했고,

이 건물지하부터 3층까지 다 돌아다녔는데 아무도 모른다 해서

만나면 가만히 안두려고 했다고 말했다고 말한 뒤,

갑자기 굳었던 표정이 풀리면서 잠시 가만있다가 "에이!"라고 외치며 가버렸다.

 

나는 그 남자를 뒤따라가,

4층에 강의하러 왔고 강의 중에는 전화를 꺼두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했음을 빨리 설명했다.

그리고 어디에 용무가 있어서 왔는지를 적어놓지 않은 것에 사과했다.

그 남자는 말없이 자신의 승용차로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나는 이만하면 충분히 사과했다고 생각하고 차로 돌아왔다.

 

3층에 근무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느 직원, 내 차 때문에 차를 빼지못한 운전자의 모습을 통해,

나는 순간 '갑과 을'의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사과에 대한 무반응을 통해 '갑의 역할'로 마무리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승용차로 40분 걸려 교회에 가야하는데,

항상 일요일 아침마다 상습적으로 내 차 앞을 가로막고 고급 외제 승용차를 주차하던

어느 여성과 아들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생각난다.

 

세번이나 불법주차가 반복되어 적어도 일요일 오전에는 이곳 주차를 피해달라고 요청했더니,

어머니로 보이는 차주는 아무 말 없었고

젊은 청년은 '아저씨! 전화번호 남겼고, 차 빼주면 그만이지 뭔 말이 많아요!'라고 큰소리로 말해서,

'불법주차 구역에 주차했으니 앞으로는 구청에 신고해 견인시킬겁니다!'라고 더 크게 한마디 해주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차를 옮겼고 이후 주차장 입구를 막는 불법주차는 없었다.

 

어제 있었던 일을 통해,

평소 이곳에 주차해서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방심했음을 깨달았고,

앞으로 이곳에 주차할 경우 행선지를 남기기로 다짐하고,

'사과에 대한 사회기술'을 생각해본다.

 

1. 나의 잘못을 파악하기 (사과하는 사람)
2. 사과를 인정하기 (사과하는 사람)
3. 사과할 때 표정, 말투, 행동에 유의하기 (사과하는 사람)
4. 무엇을 잘못했는지 요약전달하기 (사과하는 사람)
5. 왜 사과를 받아야 하는지 전달하기 (사과받는 사람)
6. 사과 받고 응답하기 (사과받는 사람)

 

1번과 2번만 잘 해도 불필요한 감정적 충돌이 많이 줄어들 것 같고,

3번과 4번을 잘 하면 보다 더 전달력있는 사과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5번의 경우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하면 좋을 것 같고,

6번의 경우도 차분한 태도를 취한다면 사과상황을 좀 더 잘 마무리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사과에 대한 사회기술 1, 2, 3, 4번이 필요해보이는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선거 때만 자칭 사회복지사'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