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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의리에 대한 생각

2017년 3월 4일에 적어본 글.


의리에 대한 생각.


대외적으로 '의리'를 강조하는 사람을 볼 때, '의리 이미지'를 연출하는 사람인지, 정말 의리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의리 컨셉으로 먹고사는 연예인을 제외하고, 대외적으로 의리를 강조하면서, 

1) 이 세상 사람을 '내 편인 사람'과 '내 편이 아닌 사람'으로 뚜렷하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람. 2) 내 편을 챙겨주는 것과 내 편이 아닌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의 차별성이 큰 사람. 3) 특정 기간에만 의리를 널리 홍보하는 사람. 

이렇게 세가지 유형의 모습을 보인다면, '의리를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의리는 곧바로 신뢰와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굳이 의리를 신뢰와 연결시킨다면, 의리는 특정인 간의 특정 기간동안만 적용되는 '한정적인 신뢰'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한테 의리를 지킨다고 해서, 타인에게도 의리를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특정인을 소개할 때, "저 사람은 의리있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저 사람은 지금 나한테 의리있는 사람이야."라고 바꾸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의리의 유효기간은 알 수 없다. 어제의 의리가 오늘의 절교나 배신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목격했던 의리는 어디까지나 '내 사람'일 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목격했던 의리는 불안정했다.


내가 더 이상 '그 사람의 사람'이 아닌 상태가 되어야만 그 사람의 한정된 의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특히 그 사람이 먼저 절교하거나 배신할 경우, 의리의 편향성을 보다 분명히 경험하리라 생각한다.


만약 "저를 뽑아주십시오! 여러분께 의리가 무엇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임기중에만,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의리를 보여주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의리도 사회복지처럼 보편적 의리인지, 선별적 의리인지 구분하고 따져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나는 선별적이고 차별적인 의리는 보았어도,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의리를 본 적 없다.


나는 '의리'라는 단어자체가 시대에 뒤쳐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와도 맞지 않는다.


의리는 한정적인 인간관계를 상징하고, 비리와 부패와 합리화로 연결되기 쉬운 위험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수를 대표하기 위해 '의리를 강조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컨셉은 의리 용량의 한계상, 식당 회식이 가능한 소규모의 집단을 이끄는 리더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연예인이나 일부 정치인처럼 이미지로 먹고 살게 아니라면 '의리 컨셉'을 바꾸라고 권하고 싶다.


한정된 의리를 계속 유지하는게 편하다면, 능력부족과 한계를 의리로 대신 채우는게 편하다면 어쩔 수 없다. 선택은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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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강남드림빌 도서관에서 찍은 것으로, 이 글과 관련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